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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하나님의교회*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다.

by 헵번♡ 2016. 5. 27.

일요일예배가 성경에 없는건 이제 많이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앗! 그럼 수요일 예배는 괜찮겠지? 하시겠지만,

수요 예배 역시 성경에 없는 사람이 지어낸 것이 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 성경에 없는 수요 예배 ]

 

출처: 패스티브닷컴(www.pasteve.com)

 

종교 관련 칼럼을 쓰다 보니 일간지에서도 단연 종교 기사에 관심이 많다. 최근 유명 일간지에 게재된 ‘美∙유럽에 없던 韓 개신교의 발명품’이라는 제하의 글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용인즉 2014년 실천신학대학원대의 교수가 목회자 900명을 대상으로 부업 실태를 조사했는데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하루 12시간씩 부업을 하면서도 수요일에는 2시간 일찍 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서론을 읽으며 ‘목회자니 수요 예배를 집전하려면 당연히 일찍 퇴근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예단했다.

 

그런데 본론으로 들어간 칼럼의 내용은 전혀 다른 쪽으로 흘렀다. 그제야 소제목을 확인했다. ‘수요 예배’.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은 개신교에서 지키고 있는 ‘수요 예배’에 관한 것이었다. 기자는 “수요 예배는 새벽 기도회, 금요 철야 기도회와 함께 한국 개신교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예배로,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라며 “‘삼일 예배’라고도 하는데, 개신교회가 지키는 주일인 일요일 후 삼일째 되는 날을 계산해 수요일에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는 한국의 개신교가 수요 예배를 지키게 된 이유가 1907년 평양 대부흥이 기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주일 예배 후 다시 일주일을 기다리는 게 너무 길게 느껴진 교인들의 열정에 비춰 봐도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 예배가 정착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 일본 메이지학원대 종교사 교수의 설명을 덧붙이며 “수요 예배는 개신교 본고장인 유럽이나 미국에도 없던 전통을 한국 개신교계의 열정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칼럼의 요지는 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개신교회가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100년이 넘게 지켜오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삼일 예배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명시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일곱째 날 안식일은 오늘날 요일로 토요일에 해당한다. 토요일 후 삼일째 예배를 드린다면 수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드려야 하는 것이다. 화요일에 드리는 삼일 예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 그는 제 삼일과 제 칠일에 이 잿물로 스스로 정결케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제 삼일과 제 칠일에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 (민수기 19:11~13)

 

 

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은 삼일째와 칠일째에 스스로 정결케 해야 한다. 삼일과 칠일에 스스로 정결해지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그저 구약시대 제사의 한 예법 정도로만 치부한다면 큰 오산이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구약의 수만 가지의 율법은 장차 올 일에 대한 그림자다. 참 형상은 지금 우리가 지키는 것으로, 삼일과 칠일에 정결해져야 한다는 것은 삼일 예배와 일곱째날 지키는 안식일로 영혼이 정결해진다는 뜻이다. 사람의 시체에 대한 말씀은 신약 시대인 지금에는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22)

 

 

죽은 자들이 어찌 죽은 자를 장사할 수 있겠는가. 눈으로 보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아 영혼의 생명을 얻지 못했으면 ‘죽은 자’로 여기셨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22:32)

 

 

예수님 당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죽은 후였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일컬어 ‘산 자’라고 말씀하셨다. 육신은 죽었으나 하나님을 영접해 영혼의 생명을 얻었다면 그는 산 자가 된다. 다시 말해 민수기에서 언급한 ‘사람의 시체’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들과 부비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가 된다. 그러니 우리는 삼일과 칠일에 하나님께 나아가 정결함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일주일 중 어느 하루만 지켜서 정결함을 받을 수 있었다면 굳이 이 두 날을 지목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삼일과 칠일에 정결함을 받으라 명하셨다. 이는 칠일만 지켜서도 안 되며 삼일만 지켜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삼일에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했다 할지라도 사일 동안 또다시 부정케 될 것이기에 칠일에 하나님께 나아가 예식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 예배와 삼일 예배는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계명이다. 안식일은 일곱째 날로서, 토요일이고, 삼일은 화요일이다. 고로, 수요 예배는 한국의 개신교가 만들어낸 사람의 계명이다.

 

 

<참고자료>
1. ‘삼일 예배’, 교회용어사전
2. ‘美∙유럽에 없던 韓 개신교의 발명품’, 조선일보